제목 믿음의 동역자와 뿌리를 찾아서 : Keith Covington McDaniel
작성자 koreabaptist
작성일자 2020-03-06
조회수 121

 남대리 선교사 딸 키이스와  두 아들과 젝슨에서 함께(2014.07.20.)


 

믿음의 동역자와 뿌리를 찾아서 : Keith Covington McDaniel


 

신약성서에 나타난 바울 서신서 마지막 부분을 보면 바울이 자신과 동역했던 사람들에게 문안을 하고 있다. 이러한 바울의 모습은 목회자로 하여금 믿음의 뿌리를 고찰하게 하고, 동역했던 믿음의 사람들을 생각나게 한다. 그리하여 우리 가족의 믿음의 뿌리를 찾아보게 되었다. 가족들의 증언을 토대로 자료를 찾고, 교회사와 기독신보 기사와 교회탐방을 통해 우리 가정의 믿음의 뿌리를 찾게 되었다. 일본이 조선을 강점하고 있던 1911Leroy Tate Newland(남대리)Sarah Louise Andrews(사라) 선교사 부부가 조선에서 사역을 하면서, 아내 이승혜 사모의 외할아버지인 김좌순을 동역자로 세웠다. 이를 통해 우리 가족에게 믿음생활이 시작되었다.



필자는 이러한 내용을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2012년부터 남대리 선교사와 그의 가족을 찾기 시작하였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터키와 이슬람권에 대한 선교사역을 하고 있는 처남인 이세웅 선교사에게 수집한 자료를 보내면서, 미국에서 남대리 선교사에 대한 정보를 찾아 달라고 요청하였다.


20146월 이세웅 선교사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왔다. 미국 미주리 주에 있는 역사박물관을 방문하여, 박물관장인 웨인 스파크맨의 도움으로 남대리 선교사 가족의 자료를 찾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곱 자녀 중에 막내딸 키이스(Keith Covington McDaniel) 현재 미국 미시시피 주 잭슨 브룩헤이븐에 살고 있다고 알려 왔다.



기쁘고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키이스와 통화를 하였다. 그녀는 본인이 키이스라고 밝히면서 매우 반가워하였다. 그리고 자신을 만나려면 서둘러 와주기를 당부하였다. 왜냐하면 당시 89세의 나이로 시간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녀는 나를 만나러 올 때 내가 여기에 있으면 너무 기쁘고, 만약 내가 여기에 없다면 천국에서 만나도록 합시다. 나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갈 그 날을 너무도 기다립니다. 위에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반겨 주실 것이고 또한 나의 아버지 남대리 선교사와 어머니 사라 그리고 두 오빠와 네 언니가 나를 기다리고 있어요.”라고 하였다.



필자는 미국 방문을 서두르게 되었다. 2014719일 이세웅 선교사와 함께 키이스 집을 방문하였다. 키이스 할머니는 우리의 방문으로 상기된 듯하였다. 우리는 남대리와 사라 선교사가족이 조선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주시고 김좌순 외할아버지를 목회자로 세워 목회자로 동역해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를 표현하였다. 그리고 준비한 한국 민속공예품을 전달하자 그녀는 감격하였다. 그녀는 다과와 음료를 준비하면서 우리말로 신나게 노래를 하셨다. 자세히 들어보니 찬송가 440어디든지 예수 나를 이끌면이라는 곡이었다. 후렴 부분에서는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어디를 가든지 겁낼 것 없네. 어디든지 예수 함께 가려네를 힘차게 반복하였다. 키이스 할머니의 찬송에서 당시 조선에 온 선교사 가족들의 믿음과 복음의 열정이 몸으로 느껴졌다.



우리는 키이스 할머니와 함께 점심식사를 하였다. 그녀는 기억에 남아 있는 한국어를 말로 표현하려고 노력하였다. 어떤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지 고민하시다가 높은 톤으로 기리요?” 하시더니, “, 그래요? 이렇게 말해야 하지요?” 하시면서 혼자 웃으셨다. 기억에 떠오르는 한국어를 말씀하시면서 또 웃으신다. 매우 유쾌해하셨다.



키이스 할머니는 아직도 한국에서 가져온 놋으로 만든 뚜껑이 있는 큰 밥그릇과 국그릇 그리고 작은 3단 자개장식장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벽에는 한국의 동양화 3점과 조선에서의 가족사진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80년 전의 일이지만 지금도 광주의 선교사 사택을 기억하고 있었다. 198445년 만에 빌리 그레이엄 목사 그룹과 함께 한국을 방문한 키이스 할머니는 광주의 선교사 사택을 방문했었다고 한다. 자신이 살던 집이 지금은 호남신학교로 사용되고 있었다면서 기뻐하였다. 그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하였다.



남대리 선교사의 막내딸 키이스는 자녀들 중에 유일하게 미국에서 태어났고, 두 살 때부터 한국에서 성장했다고 한다. 그녀는 평양여학교를 다니던 15살에 조선을 떠났다. 천황숭배와 신사참배는 우상숭배라고 가르치던 어머니 사라 선교사가 일본 경찰의 지속적인 감시와 사찰로 충격을 받아 정신적인 고통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1939년 가재도구들을 하나도 챙기지 못하고 29년 동안 사역한 조선을 황급히 떠나야 했다. 키이스는 멕시코, 우크라이나, 벨리즈 등에서 선교활동, 전도자의 삶, 크리스천 클럽 강사 등으로 활동하였고, 지금도 섬기는 잭슨제일교회에서 바이블스터디를 인도하고 있었다.



키이스에게는 21녀의 자녀가 있다. 장남 Kent는 판사로 재직 중이다. Carol는 현재 South Caroline, NC에 살고 있으며, 엄마의 친구이며 사역의 동역자라고 하였다. 자신의 유고시에는 딸에게 연락하라고 하였다. 둘째 아들 Kirk는 목장을 운영하며 농협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키이스는 다음날 오후에 그의 두 아들을 집으로 불렀다. 아들들은 어머니의 부르심에 즉시 달려왔다. 우리는 그들과 몇 시간 동안 인터뷰를 하였다.



키이스는 첫째 아들인 켄트 판사가 ‘Godly Judge’라고 뉴스에 보도되었으며, 공의로운 재판관으로 소문이 자자하다고 소개하였다. 켄트는 저희 외할아버지가 100년 전에 조선에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100년이 지난 지금, 그 때 복음을 전해 받은 한국인들이 미국으로 찾아와서 감사하다고 하는 것을 보니 놀랐습니다. 한국과 캘리포니아에서 방문해 준 당신 두 사람을 보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시며, 언약의 하나님이심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켄트 판사는 장로로서 잭슨교회를 오랫동안 섬기고 있었다.



키이스 할머니와 자녀들은 우리 가족이 80년 전에 하나님께로 가신 외할아버지 김좌순 교역자의 신앙을 이어받기 위해 미국까지 와서 인터뷰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신들도 신앙의 유산을 다음 세대에 잘 이어주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면서 다시 한 번 먼 길을 찾아와서 어머니를 위로하고 감사의 표시를 해준 우리 두 사람에게 뜨거운 마음을 전하였다.



키이스의 집에서 12일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누웠다. 녹화영상 분량이 10기가가 넘을 정도이다. 그리고 키이스 할머니는 남대리 선교사가 세웠던 교회들에게 영상 메시지와 김좌순 교역자 가족들에게 편지를 전하였다. 영상 메시지와 편지의 내용은 저는 남 키이스이며, 남대리 한국 선교사의 막내딸입니다. 김만섭 목사가 미국을 방문해 주어 이렇게 안부를 전합니다. 저는 한국을 떠나 머나먼 미국에 살고 있지만, 우리 주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가깝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하나님께 진실하라고 남대리와 사라 선교사가 세웠던 한국교회들에게 다시 한 번 권하고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귀중하신 분이십니다. 저는 약 100년 전에 부모님께서 머나먼 조선에 가서 천국의 기쁜 소식을 나누게 되었던 것을 참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함께 만나 주님을 영광스럽게 예배할 그 날을 기다립니다. God bless you 아멘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합심기도를 하고 축복하며 헤어졌다. 키이스 할머니는 남대리 선교사가 사역하였던 한국교회와 김목사를 위해 중보기도하며, 이세웅 선교사에게 안부를 물으신다고 한다. 2016년에 남대리 선교사가 입었던 한복을 필자에게 보내 주셨다. 남대리 선교사의 명주한복을 기증할 곳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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