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20230416 I 성령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체험하라 I 김만섭 목사
작성자 koreabaptist
작성일자 2023-04-16
조회수 133

제목 : 성령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경험하라

성경 : 요한복음 2025~29

설교 : 김만섭 목사

일시 : 2023416() 11:00

장소 : 영동교회

아래 주소를 클릭하면 설교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두 번째 부활 현현 사건은 요한복음 2024~29절까지 도마가 있는 중에 현현하신 사건이다.

 

첫 번째는 24~25절까지로 도마가 원하는 게 무엇인가?

두 번째는 26~28절까지로 도마가 있는 자는 자리에 주님이 현현하고, 현현을 경험한 도마가 예수님에게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세 번째는 29절은 예수님께서 너는 나를 본 거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더 복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1. 도마에게 특별히 나타나신 이유

 

도마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요한복음의 예수님은 개인별로 역사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도마가 부활에 대해서 자기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주님이 나타나서 도마의 잘못된 생각을 고쳐주시고 있다.

열두 제자 중, 하나인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 그들과 함께 있지 아니하니라.

첫 번째 부활 현현 때 도마는 없었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다.

 

부활 현현을 경험한 사람들이 공통으로 고백하는 내용이다.

 

1) 내가 주를 보았다(고전 9:1; 20:18).

사도바울이 내가 예수 우리 주를 보았다(고전 9:1).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의 예수를 만나고 나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20:18).

내가 주를 보았다. 일인칭 단수로 고백했다. 일인칭 단수는 개인적인 체험이다.

이 시간 예배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부활 현현이 있기를 축복한다.

 

2) 우리가 주를 보았다(20:25).

제자들이 도마에게 우리가 주를 보았다고 한다.

요한복음은 공동체적 고백을 할 때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한다(20:25).

안드레가 어떤 제자하고 같이 예수를 만나고 나서 시몬에게 고백할 때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주님을 공동체가 체험했을 때, 우리가 주를 보았다고 표현했다.

오늘도 예배자들에게 공동체로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는 체험이 있기를 축복한다.

 

요한복음 2025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손의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노라.

 

도마가 믿지 않는 이유가

도마가 이야기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 때의 모습이다.

내 손가락을 못 자국에 넣어보고 또 내 손을 그의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군병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려서 피와 물이 나왔다.

이 사건을 토대로 해서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

 

이 말은 바리세파 유대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믿었는데

바리세파 유대인들의 믿음을 대변하는 신학을 나타내고 있다.

 

첫째, 바리세파 유대인들이 믿는 부활관은

바리세파 유대인들은 죽은 자의 부활을 믿었다.

현재와 똑같은 상태로 다시 살아난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면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것처럼 부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것은 회생 혹은 소생이다.

도마는 부활을 신체의 존재로 다시 살아나는 부활관을 가지고 있었다.

 

사도바울이 총독들 앞에서 자기를 변호할 때,

유대인들의 소망에 대해서 여러 번 언급했다.

죽은 자의 부활 때문에 내가 이 재판을 받고 있다고 했다.

유대인들이 기대하던 부활이 도마와 같이 생각하는 부활이었다.

 

제자들이 우리가 주를 보았다고 말했을 때 도마는 자기는 확인해야겠다고 했다.

이것은 유대교의 부활관을 제시히고 있다.

 

 

둘째, 헬라인들은 전통적으로 영혼 불멸을 믿었다.

부활이란 육신은 흙으로 되었으므로 땅으로 가고 영은 부활해서 영원히 사는 것이다.

영혼불멸설로 이해하였다.

 

부활은 영혼 불멸도 아니고 또 신체의 존재로 다시 살아나는 존재도 아니다.

부활은 존재의 변형, 육신을 가진 인간 존재에서, 영원한 존재 혹은 초월적 자의 존재로 존재가 변형되는 것이다.

셋째, 기독교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의 부활은 존재의 변형이다.

 

육신을 가진 인간 존재에서 초월자의 존재로 변형된 존재의 변형이다.

신약성경의 부활관에서 일차적인 의미는 존재의 변형이다.

공생애를 사셨던 인간 존재에서 하나님의 초월자로 변형이다.

예수의 부활은 초월자의 존재로의 변형이다.

 

사도바울은 그것을 신령한 몸이다. 또 생명이 몸이다. 또 영광의 몸이다. 그래서 육의 몸이 있은 즉, 신령한 몸이 있다고 말했다.

또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의 영광의 몸의 형체로 변형시킨다.

 

요한은 기독교의 부활은 유대교인이 생각하는 부활과 다르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바리새인들이 기대했던 부활도 아니다.

 

 

첫 번째 대지에서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부활관

 

사도바울은 몸의 대조

고린도전서 1544절에 육의 몸이 있은, 즉 신령한 몸, 영의 몸이 있다.

빌립보서 321절에 우리의 낮은 몸을 그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형시킨다.

로마서 811절 죽을 몸도 살리신다.

 

죽을 몸이라는 것은 언젠가는 한번 죽음을 직면해야 되는 존재가 죽을 몸이다.

인간이 그리스도의 안에 들어왔을지라도 한 번은 신체가 죽어야 한다.

 

그런 존재를 가리켜 죽을 몸인데 죽을 몸이 살아나게 하리라고 한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한다는 것이 신약성경의 부활관이다.

 





2. 성령으로 삼위일체 예수를 체험하라

 

두 번째는 26절에 도마와 대화를 토대로 주님이 특별히 도마에게 말씀하기 위해서 현현는 장면이다.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집 안에 있을 때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8일 지나서,

주일로부터 그다음 주일이 8일입니다.

 

처음 현현의 모습과 동일한 모습이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부활의 예수를 표현할 때 "서서"라는 표현은 "주님이 행동하기 위해 준비된 상태" 부활의 주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표현되기도 했고, 서 계신다고 표현한다.

 

특히 계시록에서는 "어린 양이 보좌 가운데 서 계신 어린 양", 서 계신다고 표현했다.

어떤 행동을 위해 준비된 상태를 가리킨다.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지난 주일에 첫 번째 현현 때 강조한 내용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내 손가락을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또 내 손을 내밀어 네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어라

 

주님이 현현하셨는데 주님의 존재는 부활의 존재이다.

초월적 자의 존재로 변형되신 분으로 도마와 제자들에게 공생애 때의 마지막 장면, 손에 못이 박히고 창에 찔린 옆구리, 십자가에 달리셨던 때의 모습으로 제자들에게 보여주신다.

 

그리하면서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어라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말씀하셨지만, 실제로 도마가 손가락을 못 자국이나 옆구리에 손을 넣는 행동을 실제로 하지는 않았다.

 

도마가 믿지 않으려는 마음 자세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보여주시고 나서,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어라.

 

 

믿어야지 부활이라는 것이 믿음으로 이해가 되고 깨닫게 되고 확신할 수 있게 된다.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증명해서 이해하고 믿게 되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부활하신 예수의 말씀 또 부활에 관한 복음의 말씀을 믿어야 이해가 되고 또 깨닫게 되고 확신에 이르게 된다.

 

이것은 요한복음 전체를 통해서 주님의 교훈 속에 강조했던 내용이다.

베드로가 고백할 때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인 줄 우리가 믿고 알았습니다.

 

믿으면 알게 되고 또 믿으면 체험하고 깨닫고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순서가 먼저 믿음이다.

주님에 대한 믿음 또 주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먼저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케리그의 중요한 내용이다.

 

요한복음 141절에서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고별 강화의 첫 번째 말씀이

"하나님을 믿으라 그리고 또 나를 믿어라" 먼저 믿어야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예수의 부활도 믿어야 부활을 깨닫고 또 부활의 생명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도마가 깨닫고 나서 고백한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주는 퀴리오스라는 단어와 나의 하나님 데오스라는 단어이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부활하신 예수의 존재를 주와 하나님으로 믿고 인정하고 부르는 중심적인 표현이다.

 



사도바울도 빌립보서 211절에

모든 입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

 

예수는 주님이시다.

요한은 한 걸음 더 나가 부활의 예수를 향해서 나의 하나님이시다고 고백하고 있다.

신학적으로 도마에 고백에서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했기 때문에 예수는 하나님이다.

이 말씀에 근거하여 예수는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은 예수 그리스도만을 가리켜 고백하는 게 아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의 부활 현현은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사건이다.

승천 후 현현이다.

 

요한복음에서 승천은 아들이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의 완결이다.

아들이 아버지께로 돌아가면 아버지와 아들의 하나 됨이 완결된다.

고별 강화에 가장 중요한 신학적인 내용이다.

 

아들이 아버지께로 돌아가는데,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을 통해서

아버지와 아들과 하나님이 완결되어,

너희가 아버지가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제자들에게 현현하신 주님은,

승천 후 현현이기 때문에 현현하신 주님으로,

존재 자체가 예수님으로만 현현한 것이 아니고,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현현하신 결과이다.

 

그래서 도마의 대답은

예수 그리스도 개인을 가리켜, 개별적인 존재를 가리켜, 고백한 게 아니고,

요한복음 전체를 통한 삼위일체 신학에 기초해서 현현하신 예수가

바로 아버지와 아들과 하나 됨이 완결된 삼위일체의 존재로 제자들에게 온 것이라고 고백을 통해 선언하는 것이다.

 

요한 1423절에도 우리가 그에게 와서 그와 함께 거처를 만들 것이다.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가리킬 때,

보혜사 성령으로 오신다고 표현하기도 하고,

내가 온다. 부활하신 주님 자신이 오신다고 표현하기도 했고,

또 우리가 온다.

우리라는 일인칭 복수를 써서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로 하나 됨이 완결된 존재로 예수를 사랑하고, 예수의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 와서 그와 함께 거처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말씀들과 같은 맥락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해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예수는 하나님이 아니고,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요한복음에서 일관되게 예수는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 독생자이다.

 

요한복음서를 쓴 목적을 2031절에 보면,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임을 믿게 하며 또 너희로 믿고 그의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함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의 존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존재성에 있어서 아버지, 아들, 성령은 동일 본질이다.

또한 동일 본질이지만 따로 개별성과 구별성을 가진 존재이다.

삼위일체 논쟁 과정에서 확립하게 되었다.

 

예수는 본질에서는 아버지와 동일하지만 개별성 구별성을 가진 존재로 위격은 세 분이다.

전체적인 존재에 있어서는 한 분 하나님을 구성하는 것이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은 두 번째 대지에서 선포해야 할 복음이다.

 

예수님이 다시 현현하여 도마의 의심을 풀어주면서 예수님의 부활이 유대인들이 생각한 부활과 전혀 다른, 초월자의 존재로 변형된 존재이면서 또 동시에 본질에 있어서는 하나님과 동일 본질의 존재지만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또 구별된 또 개별적인 존재로 존재하신다.

 

아버지, 아들, 성령 그래서 요한복음 전체적으로 예수님은 늘 아버지 아들을 분리해서 언급해 온 것과 같은 맥락의 교훈이다.

이 부분을 믿고 이해하시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시다.

 

예배자가 십자가의 예수, 부활하신 예수, 승천하신 예수,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삼위일체 신관을 가지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매우 귀한 신앙 고백이다. 성령으로 삼위일체 예수님을 예배하기를 축복합니다.

3.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의 정체성

 

요한복음 20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거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을 복되도다 하시느라.

 

우리말 성경은 의문문으로 번역했다.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그런데 이것은 의문문일 수도 있고 평서문일 수도 있다.

평서문으로 본다면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고 있다.

 

지금 그가 본다는 것은 부활 현현의 경험을 가리키는 것이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도마를 비롯해서 예수님의 처음 제자들은 세 번씩이나 경험했다.

 

주님이 살아계시고, 또 성령으로 오시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역사하시는 분이라는 것은 깊이 깨닫게 되고 또 확신하게 됐다.

그래서 부활 현현의 경험을 토대로 믿는 처음 제자들의 믿음을 표현한 말씀이다.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고 있다.

그러나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예수의 제자들을 통해 전도 받고 믿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예수의 제자들이 경험한 것과 똑같은 부활 현현의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후대의 제자들이다.

 

200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로 이 사람들에 속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제자들이 경험했던 것처럼 그런 부활 현현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있도다.

 

제자들이 예수의 부활 현현을 경험하고 믿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다음의 제자들은 증언을 통해 말씀을 믿음으로 부활의 예수를 만나는 체험을 한다.

그리고 그 믿음의 결과를 받는 일은 처음 제 제자들이나 후대의 제자들이나 동일하게 받게 된다는 것이다.

 



후대의 제자들도 말씀을 믿는 믿음과

또 믿음을 통해 역사하는 성령의 감동을 통해서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경험했을 때의 부활 현현의 감동을

동일하게 기록된 말씀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체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후대의 제자들인 우리는

처음 제자들과 같은 동일한 부활 현현의 경험을 하지 않을지라도

그들이 경험한 것을 토대로 제시한 증언의 말씀을

믿음으로 부활의 예수를 만나는 감동을 경험하게 되고

또 부활의 예수로부터 주는 생명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명을 받고 누리고 나눠주는 삶을 사는 데 있어서는

처음 제자들과 동일한 결과가 되는 것이다.

 

 

세 번째 대지에서는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로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계시의 감동, 성령의 감동을 받는 만큼 그들의 체험에 참여할 수 있다.

 

또 그만큼 생명을 얻어서 깨달음을 받고 확신을 받고 더 나아가 권능을 더 받고,

그리고 나가서 예수를 증언하는 또 전도하는 증인이 될 수 있다.

 

성령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체험하라

그래서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3일째

하나님과의 만남은 어디서부터 시작하느냐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로부터 시작한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통해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또 예 그리스도를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을 체험하게 된다.

 

요한복음 11절에

태초의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다.

예수는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근거 구절이다.

그러나 "함께 계셨다." 는 말씀을 생략하고 하는 말이다.

 

요한복음 1030절에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유대인들은 네가 하나님이냐고 오해하였다.

 

원문에 하나라고 할 때, 대명사가 우리는이다.

나와 아버지와 우리는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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